물가가 올라가도 천 원은 여전히 싸다
치솟는 물가에 커피 한 잔도 5천 원을 넘는 시대. 하지만 대한민국 어딜 가든 여전히 ‘천 원짜리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다이소(Daiso)다.
수세미, 볼펜, 화장품, 생필품, 수납박스까지, 일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을 천 원 또는 그 근처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이 곳은 단순한 ‘저가 생활용품점’이 아니다. 오늘날 다이소는 연 매출 3조 원을 넘나드는 유통 강자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브랜드를 만든 사람은 의외로 수수하고 단순한 철학 하나로 이뤄냈다. 바로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제공하자”는 철학이다.
다이소의 창업자 박정부 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기에 이 회사를 세웠다. “1000원으로도 살 수 있는 좋은 물건이 있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찾는다”는 신념 하나로. 그는 한국인의 소비 습관을 바꿨고, 결국 유통의 룰마저 새로 썼다. 이 글에서는 박정부 창업자의 경영 철학과 다이소의 성장 전략, 그리고 그 철학이 오늘날 어떤 가치를 주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1. 돈보다 ‘사람’을 먼저 본 창업자, 박정부의 출발점
박정부 회장은 창업 이전부터 ‘생활용품’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데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1980년대 일본 제품을 수입해 백화점에 납품하며 유통업의 기초를 닦았고, 이후 국내 중소 제조업체의 제품을 발굴해 대중에게 직접 판매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했다.
다이소의 본격적인 시작은 1997년이다. 당시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고급화 전략을 추구할 때, 박 회장은 거꾸로 갔다. “좋은 품질이라도 가격이 비싸면 소비자는 외면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균일가 1,000원’을 내세운 다이소를 론칭했다. 당시만 해도 천 원에 물건을 파는 건 ‘이윤이 남지 않는 미친 전략’이라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박 회장은 가격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저소득층, 자취생, 청년, 신혼부부 등 다양한 소비자층이 겪는 ‘생활비 부담’에 공감했고, 그들이 웃을 수 있는 가격으로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는 대기업에서 일한 적도 없고, 유학을 간 적도 없지만, 소비자 관찰력과 공급망 설계에 대한 감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창업 초기에 하루 매출이 2만 원도 안 되던 시절에도 그는 “내가 안 사는 물건은 고객도 안 산다”는 기준으로 상품을 직접 고르고, 진열하고, 팔았다. 이 철저한 소비자 중심 철학이 오늘의 다이소를 만든 시작점이다.
2. 천 원에 담긴 전략: 싸게만 팔면 망한다
다이소가 단지 싸게만 팔았더라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부 회장은 ‘천 원’이라는 가격 안에 치밀한 전략을 담았다. 그 핵심은 세 가지다. 1) 유통비 절감, 2) 중소기업과의 상생, 3) 독자적 상품기획(PB)이다.
* 유통비 절감
다이소는 ‘직매입’ 방식을 채택한다.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위탁받아 팔고, 팔린 만큼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다이소는 아예 생산자에게 직접 제품을 사들인 뒤 자사 물류망을 통해 전국 매장으로 유통한다. 중간 유통 마진이 없으니 소비자에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 물류 시스템은 다이소의 경쟁력의 핵심이다. 2020년 기준 전국 1,400여 개 매장은 모두 본사 물류센터에서 관리되며, 하루 평균 6,000개 품목이 빠르게 회전된다. 이처럼 균일가 유지를 위한 ‘속도와 효율의 유통 설계’는 박 회장의 전략적 감각에서 출발했다.
* 중소기업과의 상생
다이소 제품의 약 70%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이다. 단가를 낮추는 대신 다이소는 대량 발주와 장기 계약, 납기 보장 등으로 협력사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왔다. 박정부 회장은 “우리가 갑이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상생 모델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품질 경쟁력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다이소 자체의 브랜드 신뢰도까지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 독자적 상품기획(PB)
다이소의 PB 제품은 단순한 ‘카피’가 아니다. 실제로 소비자 사용 후기, 반품율, 계절 변화 등을 기반으로 매주 수십 개 신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테스트한다. ‘천 원이지만 필요한 기능은 다 갖춘다’는 철학은, 철저한 상품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박 회장이 “싸지만 쓸모없으면 버리는 비용이 더 크다”고 강조한 데서 비롯된 전략이다.
3. 가성비를 넘어 ‘생활 플랫폼’이 된 다이소
다이소는 이제 단순한 저가 매장이 아니다. MZ세대는 이곳을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처럼 여긴다. 집꾸미기, 취미, 여행, 공부 등 다양한 테마에 맞는 제품들이 진열된 매장을 둘러보며 작은 쇼핑의 재미와 영감을 동시에 얻는다.
다이소는 이를 활용해 SNS 마케팅과 콘텐츠 전략도 강화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소 제품을 소개하는 콘텐츠는 ‘저렴한데 실용적인 꿀템’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집콕 문화와 미니멀 라이프에 최적화된 제품들이 주목받으면서, 다이소는 **‘새로운 일상템 발굴 공간’**으로도 자리 잡았다.
박정부 회장은 2022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싸게 파는 회사가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을 돕는 회사입니다.”
그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쟁이 치열한 시대,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한 ‘생활 밀착형 유통’의 성공모델은 박 회장이 꿈꾸던 ‘천 원짜리 철학’의 결과물이었다.
천 원이 바꾼 한국 유통의 역사
다이소는 값싼 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물건을 사고, 매장에서 즐거움을 얻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을 위한 경영’**이라는 창업자의 철학이 있다.
IMF 시절, 박정부 회장은 가진 것도, 보장된 미래도 없었다. 하지만 소비자를 믿고, 가격을 낮추되 품질을 높이고, 함께 가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 그가 세운 ‘천 원짜리 철학’은 이제 한국 유통업계의 상징이 되었고, 수천억 원의 기업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 다이소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철학을 파는 공간이 되었다. 이것이 진짜 성공이다.